법률 용어 순화는 왜 필요할까요?

얼마 전 강의에서 ‘기왕증’이라는 말을 꺼냈더니 몇몇 분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과거 증세’라고 풀어 말하자 뜻이 바로 전달됐고요. 법을 읽을 때도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낯선 단어 하나에서 막히면 그 뒤에 적힌 권리와 의무까지 따라가기 어려워집니다.
법률 용어 순화는 무엇을 바꾸나요?
법률 용어 순화는 법령에 쓰인 어려운 말을 뜻이 더 잘 드러나는 표현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법제처의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은 한자어와 일본식 용어, 전문용어뿐 아니라 길고 복잡한 문장도 다룹니다. 한자를 한글로 옮기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문장 속에서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읽히도록 고치는 작업까지 포함합니다.
예를 들어 법제처가 제시한 사례에는 ‘앙등하다’를 ‘오르다’로, ‘변경이 있는 경우에는’을 ‘변경된 경우에는’으로 다듬은 표현이 있습니다. 앞의 사례는 낯선 단어를 바꾼 것이고, 뒤의 사례는 문장의 뜻을 분명하게 만든 것입니다. 단어가 쉬워져도 문장이 모호하면 법을 읽는 어려움은 남습니다.
언제부터 시작됐고 어디까지 왔나요?
법제처는 2006년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07년 3월부터는 마련한 정비 기준을 국무회의에 상정하는 법령 등에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순화가 어느 하루에 모든 법률에 일괄 적용된 제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 법령의 개정 절차를 거쳐 문구가 바뀌므로, 실제 적용 시점은 해당 법령마다 다릅니다.
법제처가 2016년 10월 공개한 10년간의 실적을 보면, 국회에 제출한 법률 정비안은 1,106건이고 그중 국회를 통과한 법률은 877건입니다.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하위법령 정비는 3,211건으로 집계했습니다. 제출 건수와 통과 건수를 나눠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바꾸자고 제안한 표현이 곧바로 현행 법률의 문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2026년 10월 2일에는 법제처가 사업 20주년을 맞아 국민이 고른 대표적인 쉬운 법령 용어 5개를 발표했습니다. 이미 다뤄 온 표현 20개를 후보로 놓고 진행한 설문에 2,873명이 참여했습니다. 이는 어떤 용어의 순화 효과가 잘 전달되는지 보여주는 조사 결과입니다. 그날 5개 표현이 모든 법령에서 새로 시행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제 표현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법제처가 2026년 설문 결과에서 소개한 표현을 보면 바꾸는 방향이 꽤 구체적입니다.
- ‘사위(詐僞)’는 문맥에 따라 ‘거짓’ 또는 ‘속임수’로 풀었습니다.
- ‘개호(介護)’는 ‘간병’으로 바꿔 뜻을 드러냈습니다.
- ‘기왕증(旣往症)’은 ‘과거 증세’로 풀었습니다.
- ‘인터체인지’는 ‘나들목’으로 다듬었습니다.
- ‘파출부’는 ‘가사도우미’로 바꿨습니다.
모두 같은 이유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사위’와 ‘기왕증’은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한자어이고, ‘인터체인지’는 외래어입니다. ‘파출부’ 사례에는 직업을 부르는 표현을 다듬는 문제도 들어 있습니다. 법률 용어 순화를 그저 어려운 단어를 쉬운 단어로 바꾸는 일이라고만 보면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2016년 법제처가 공개한 사례에도 ‘요부조자’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계출하다’를 ‘신고하다’로 바꾼 예가 있습니다. ‘신고하다’는 일상에서 쓰는 말이라 행동을 바로 떠올리기 쉽습니다. 반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처럼 풀어 쓴 표현은 길어지더라도 누구를 가리키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쉬운 말이면 언제나 더 정확할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요구가 함께 있습니다. 시민의 눈에는 법에 적힌 자격, 기한, 의무가 읽혀야 합니다. 법을 적용하는 사람의 눈에는 같은 표현이 같은 범위를 가리켜야 하고요. 단어만 바꿨다가 대상이 넓어지거나 좁아진다면 쉬워 보여도 좋은 개정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법제처의 민법 용어 순화 입법예고 자료는 ‘선의·악의’, ‘하자’, ‘유류분’처럼 법학과 실무에서 뜻이 확립됐거나 대체가 어려운 용어를 개정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일상에서 ‘악의’는 나쁜 마음으로 들리지만, 법률 문맥에서는 별도의 뜻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단어를 억지로 바꾸기보다 처음 읽는 사람에게 뜻을 함께 설명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문맥입니다. ‘사위’를 무조건 한 단어로 치환하기보다 조문에서 무엇을 거짓으로 꾸몄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법령은 적용 대상과 요건, 예외가 맞물려 있으니까요. 그래서 순화된 표현을 보더라도 실제 권리나 의무를 확인할 때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해당 법령의 현행 조문과 시행일을 함께 읽는 것이 안전합니다.
법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일과 법의 뜻을 정확히 지키는 일은 함께 가야 합니다. 강의실에서 낯선 말 하나를 풀어 주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듯, 법령에서도 그런 작은 변화가 쌓일 때 시민이 자기 일과 관련된 규칙을 스스로 읽을 여지가 넓어진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