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용어 과실은 단순한 실수와 왜 다를까요?

강의에서 사고 뉴스를 읽다 보면 ‘실수했다’와 ‘과실이 있다’를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는 분이 많습니다. 말은 비슷하지만 법률에서 과실은 조금 더 좁고 구체적인 판단입니다. 사고가 났다는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당시 그 사람이 어떤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고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를 따집니다.
실수 중에서도 무엇을 과실이라고 할까요?
과실은 요구되는 주의를 다하지 않아 위험한 결과를 일으킨 경우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오가는 통로를 청소하면서 바닥을 젖게 해 놓았다면, 미끄러질 위험을 예상하고 물기를 닦거나 경고 표시를 둘 수 있었는지가 쟁점이 됩니다. 누군가 넘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청소한 사람의 과실이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판단의 순서는 대체로 이렇습니다. 먼저 그 상황에서 지켜야 할 주의의무가 있었는지 봅니다. 다음으로 사고를 미리 예상할 수 있었는지, 적절한 조치로 피할 수 있었는지 살핍니다. 주의를 다하지 않은 점과 실제 손해 사이에 관계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장소의 구조, 당시 보이는 상황, 맡은 업무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고의와도 구별해야 합니다. 고의는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한 인식·의사를 따지는 개념입니다. 과실은 피해를 바라지 않았더라도 필요한 주의를 다하지 않았는지를 묻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라는 말만으로 과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사와 형사에서 쓰임이 어떻게 다를까요?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하게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힌 사람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정합니다. 민사에서 과실은 누가 손해를 부담할지를 가리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만 손해가 발생했고 누군가 실수했다는 사정만으로 배상액까지 곧바로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위법한 행위, 손해, 그 사이의 관계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형사에서는 그 행동을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형법 제14조는 정상적인 주의를 게을리해 범죄 성립에 필요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라도,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한다고 정합니다. 형법에 과실치상죄와 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죄가 따로 규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민사상 배상책임이 문제 된다고 해서 언제나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두 절차의 판단이 항상 같을 필요도 없습니다. 형사사건에서는 범죄 성립에 필요한 사실을 엄격하게 증명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의료사고 사건에서 업무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책임이 검사에게 있고, 그 증명 정도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업무상 과실과 중대한 과실은 무엇이 다른가요?
업무상 과실은 맡은 일의 내용과 지위에 비추어 요구되는 주의를 게을리한 경우를 말합니다. 같은 위험이라도 그 업무를 맡은 사람에게 어떤 확인과 조치가 요구되는지 따져야 합니다. ‘업무 중 사고’라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2025년 4월 15일 대법원이 선고한 작업치료 중 사고 사건이 이를 보여 줍니다. 법원은 치료 대상자가 넘어져 다쳤다는 결과에 더해, 치료사가 어떤 주의의무를 어겼고 그것이 상해와 어떻게 이어졌는지가 구체적으로 증명됐는지 살폈습니다. 돌발적으로 생길 수 있는 모든 사고를 치료사가 통제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중대한 과실은 주의의무를 어긴 정도가 현저한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렇다고 피해가 크면 곧바로 중대한 과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2024년 5월 17일 대법원은 중앙선 침범 교통사고로 사람이 크게 다친 사건에서도, 중앙선을 넘었다는 사실만으로 중대한 과실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왜 차선을 넘었는지, 사고를 피하려는 과정이었는지 등 당시의 사정을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실 비율’은 무엇을 나타낼까요?
교통사고 기사에 나오는 과실 비율은 손해를 어느 범위에서 나눠 부담할지를 설명할 때 쓰입니다. 민법 제396조와 제763조에 따르면 피해자에게도 손해의 발생이나 확대에 과실이 있는 경우, 손해배상 책임과 금액을 정할 때 이를 고려합니다. 이를 과실상계라고 합니다.
가령 배상 대상 손해가 100만 원이고 피해자 측 과실을 20%로 평가했다면, 단순화한 계산에서는 나머지 80만 원이 배상 범위가 됩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손해 항목, 보험관계, 당사자의 행동 등을 더 살펴야 하므로 이 숫자가 모든 사건의 계산식은 아닙니다. 특히 과실 비율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잘못의 ‘점수’를 매긴 숫자가 아닙니다. 손해가 생긴 과정에서 각자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따진 결과입니다.
사고 소식을 접할 때 저는 ‘누가 잘못했나’보다 먼저 ‘사고 전에 무엇을 알 수 있었고, 어떤 조치가 가능했나’를 묻습니다. 과실이라는 말은 바로 그 사고 전의 사정을 확인할 때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