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은 무엇을 정할까요?

뉴스에서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강의실에서는 비슷한 질문을 듣습니다. 전쟁 중 벌어진 일이라면 이 재판소가 모두 다룰 수 있느냐는 겁니다. 답을 찾으려면 재판소의 설립 근거인 ‘로마규정’부터 읽어야 합니다. 로마규정은 어떤 범죄를, 어느 시점부터, 어떤 조건에서 재판할 수 있는지 정한 국제조약입니다.
로마규정은 왜 만들어졌을까요?
국제형사재판소는 국가 사이의 분쟁을 판단하는 국제사법재판소와 역할이 다릅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중대한 국제범죄에 책임이 있다고 의심받는 개인을 수사하고 재판합니다. 정부나 국가 자체를 피고인으로 세우는 법원은 아닙니다.
로마규정은 1998년 7월 17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채택됐고, 60개국의 비준이라는 발효 요건을 채워 2002년 7월 1일 효력이 생겼습니다. 그날 국제형사재판소도 출범했습니다. 이전에는 특정 분쟁을 다루기 위해 별도의 국제재판소를 세우는 방식이 쓰였습니다. 로마규정은 상설 재판소가 일할 공통의 기준을 마련한 셈입니다.
한국은 2002년 11월 13일 로마규정을 비준했고, 한국에 대해서는 2003년 2월 1일부터 효력이 생겼습니다. 유엔 조약 현황에 기록된 두 날짜가 다른 이유는 비준서를 맡긴 날과 조약이 그 나라에 적용되기 시작한 날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범죄를 다루나요?
로마규정이 정한 범죄는 네 가지입니다. 집단살해죄는 특정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하려는 의도를 요건으로 합니다. 인도에 반한 죄는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조직적인 공격과 관련됩니다. 전쟁범죄에는 무력충돌 중 민간인을 고의로 공격하는 행위 등이 포함됩니다. 침략범죄는 국가의 침략행위를 계획·준비·개시·실행할 지위에 있는 지도층의 책임을 다룹니다.
네 범죄 모두 이름만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쟁 중 민간인이 숨졌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전쟁범죄가 확정되지는 않습니다. 공격 대상과 의도, 당시의 군사적 상황, 지휘 관계 등을 증거로 따져야 합니다. 집단살해죄도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숫자와 별도로, 집단을 파괴하려는 의도가 입증돼야 합니다.
침략범죄에는 특히 별도의 관할 조건이 붙습니다. 관련 개정은 2010년 채택됐고, 국제형사재판소는 2018년 7월 17일부터 그 관할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네 범죄가 모두 같은 조건으로 재판소에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실제 규정을 놓치기 쉽습니다.
어느 사건까지 재판할 수 있나요?
첫 기준은 시간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원칙적으로 로마규정이 발효된 2002년 7월 1일 이전의 행위를 재판할 수 없습니다. 그 뒤 가입한 나라에서는 대체로 그 나라에 규정이 발효된 날 이후의 범죄가 대상입니다. 과거의 사건이 매우 중대하더라도 재판소의 권한이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다음은 영토와 국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범죄가 당사국 영토에서 일어났거나 혐의자가 당사국 국민이면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혐의자의 국적국이 가입하지 않았어도, 행위가 당사국 영토에서 발생했다면 재판소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비당사국이 특정 상황에 대해 관할권을 받아들이는 길도 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상황을 회부하면 비당사국에서 일어난 사건도 다룰 수 있습니다.
다만 관할권이 있다는 말은 곧바로 유죄라는 뜻이 아닙니다. 수사할 수 있는지, 사건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혐의가 증명됐는지는 각각 다른 판단입니다. 침략범죄의 관할 조건도 다른 세 범죄보다 좁으므로 사건별로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국내 법원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로마규정의 중요한 원칙은 ‘보충성’입니다. 범죄가 발생한 나라가 진정으로 수사하고 재판할 수 있다면 국내 사법절차가 먼저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해당 국가가 수사·기소할 의사가 없거나 실제로 그렇게 할 능력이 없는 경우 등에 사건을 맡습니다. 국내 재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국제형사재판소가 자동으로 다시 재판하는 구조는 아닙니다.
이 원칙을 지지하는 쪽은 국내 사법권을 존중하면서 중대한 범죄에 책임을 묻는 길을 남긴다고 봅니다. 반면 실제 사건에서는 국내 절차가 얼마나 진정한 수사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국가 간 협력 수준에 따라 집행력이 달라진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두 논점 모두 로마규정의 운영 방식을 이해할 때 필요한 부분입니다.
체포영장이 나오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체포영장은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 피의자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입니다. 유죄 판결은 아닙니다. 국제형사재판소에는 자체 경찰력이 없으므로 체포와 인도에는 국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당사국은 규정에 따라 재판소의 체포·인도 요청에 협력할 의무를 지지만, 실제 이행을 둘러싼 문제는 별도로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뉴스의 한 문장을 읽을 때도 순서를 나눠 보면 좋겠습니다. 어떤 범죄 혐의인지, 행위가 언제 어디서 일어났는지, 재판소가 관할권을 갖는지, 국내 수사는 어떻게 진행됐는지, 체포가 가능한지가 차례로 다른 질문입니다. 로마규정은 이 질문들에 공통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 기준을 적용한 판단은 증거와 절차를 거쳐 사건마다 내려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