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는 누구를 재판할 수 있을까요?

뉴스를 읽다가 ‘국제형사재판소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는 문장에서 잠시 멈춘 적이 있습니다. 영장이 나오면 곧바로 체포되는 건지, 재판을 거쳐 유죄가 확정된 건지 헷갈리기 쉽습니다. 이 차이를 알려면 먼저 재판소가 어떤 사건을 맡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왜 생겼을까요?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이나 대규모 폭력 속에서 발생한 중대한 범죄에 대해 개인의 형사책임을 묻는 상설 재판소입니다. 1998년 7월 17일 채택된 로마규정이 설립 근거이고, 규정이 발효된 2002년 7월 1일 재판소가 출범했습니다. 본부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습니다.
이전에 특정 분쟁을 다루는 국제재판소도 있었지만, 사건마다 별도의 재판소를 만드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로마규정은 계속 운영되는 재판소의 권한과 절차를 미리 정했습니다. 다만 국제형사재판소가 모든 나라의 모든 범죄를 맡는 것은 아닙니다.
이름이 비슷한 국제사법재판소와도 구분해야 합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 사이의 분쟁을 다루는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국가 자체가 아니라 혐의를 받는 개인을 재판하며, 유엔의 기관이 아닌 독립된 재판소입니다.
어떤 범죄와 사건을 다룰 수 있을까요?
로마규정이 정한 범죄는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네 가지입니다. 무력 충돌 중 발생한 모든 사망이 곧 전쟁범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공격했는지처럼 각 범죄의 법적 요건과 개인의 책임을 증거로 따집니다. 침략범죄에는 다른 범죄보다 별도의 관할 제한도 적용됩니다.
시점도 중요합니다. 재판소는 원칙적으로 2002년 7월 1일 이후의 범죄를 다룹니다. 그리고 범죄가 로마규정 가입국의 영토에서 발생했거나, 혐의자가 가입국 국민이어야 하는 등의 관할 근거가 필요합니다. 비가입국이 특정 상황에 대한 관할을 받아들이거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사안을 회부하는 길도 있습니다. ‘비가입국 국민이면 무조건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유엔 조약 기록상 2002년 11월 13일 로마규정을 비준했고, 한국에 대해서는 2003년 2월 1일부터 효력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한국과 관련된 사건도 범죄 발생 시점과 장소, 혐의자의 국적, 범죄 요건을 각각 확인해야 합니다.
체포영장이 나오면 재판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국제형사재판소는 각국 법원을 대신하는 상급 법원이 아닙니다. 관계국이 해당 사건을 진정으로 수사하거나 기소할 의사 또는 능력이 없는 경우에 재판소가 개입한다는 ‘보충성’ 원칙을 따릅니다. 국제형사재판소가 사건을 다룰 수 있는지 판단할 때 국내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보는 이유입니다.
수사 뒤 검사가 체포영장을 청구하면, 재판부는 그 단계에 필요한 혐의의 근거가 있는지 판단합니다. 영장 발부는 유죄 판결이 아닙니다. 혐의자는 이후 절차에서 혐의를 다툴 수 있고, 유죄는 재판을 거쳐 판단됩니다.
현실적인 제약도 있습니다. 재판소에는 자체 경찰력이 없어 체포와 이송에 각국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가입국에는 로마규정에 따른 협력 의무가 있지만, 영장이 발부됐다는 사실만으로 혐의자가 곧바로 헤이그 법정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 결정과 실제 집행을 구분해서 읽어야 합니다.
최근 뉴스는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을까요?
우크라이나 사례는 가입 여부와 관할 범위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우크라이나는 가입 전인 2015년 9월, 자국 영토에서 2014년 2월 20일 이후 발생한 혐의에 대해 재판소의 관할을 받아들였습니다. 재판소는 2023년 3월 17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에 대해 우크라이나 아동의 불법 이송·추방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로마규정이 발효돼 가입국이 된 날은 그보다 뒤인 2025년 1월 1일입니다.
팔레스타인 상황에서도 시간과 장소가 쟁점입니다. 팔레스타인에 로마규정이 발효된 날은 2015년 4월 1일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2024년 11월 21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해 전쟁범죄와 인도에 반한 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재판부가 그 단계에서 관할과 혐의의 근거를 판단했다는 뜻이지, 혐의가 재판에서 확정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재판소를 두고는 국가 권력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통로가 필요하다는 견해와, 체포에 국가 협력이 필요한 구조에서는 집행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함께 나옵니다. 두 주장은 서로 다른 지점을 짚습니다. 그래서 관련 뉴스를 볼 때 저는 세 가지를 확인합니다. 어떤 범죄 혐의인지, 재판소가 관할한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지, 지금 절차가 영장 단계인지 재판 단계인지입니다. 그 순서만 지켜도 같은 헤드라인을 훨씬 정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