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위치는 왜 헤이그일까요?

국제뉴스에서 ‘헤이그의 재판소’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지도를 먼저 떠올리는 분이 있습니다. 유엔 기관이라면 미국 뉴욕에 있을 것 같은데, 왜 네덜란드 도시가 등장할까요? 국제사법재판소 위치를 알면 재판소가 생겨난 순서와 어떤 사건을 다루는지도 함께 보입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헤이그 어디에 있나요?
국제사법재판소(ICJ)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평화궁에 있습니다. 재판소가 안내하는 주소는 ‘카네기플레인 2, 2517 KJ 헤이그’입니다. 유엔의 주요 기관 여섯 곳 가운데 뉴욕에 자리하지 않은 기관은 국제사법재판소뿐입니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 규정 제22조도 재판소의 소재지를 헤이그로 명시합니다. 다만 재판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다른 곳에서 재판을 열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헤이그는 상설 소재지라는 뜻입니다.
평화궁이라는 이름 때문에 재판소가 건물 전체를 단독으로 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상설중재재판소와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 평화궁 도서관도 이곳에 자리합니다. 평화궁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곳은 카네기재단입니다. 따라서 ‘국제사법재판소가 헤이그에 있다’는 말과 ‘평화궁이 국제사법재판소 소유다’라는 말은 서로 다릅니다.
왜 뉴욕이 아니라 헤이그일까요?
이유를 알려면 유엔이 생기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899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1차 평화회의는 국가 간 분쟁을 중재로 해결할 수 있도록 상설중재재판소를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회의에는 26개국 대표가 참여했습니다. 이후 중재 업무를 위한 건물로 평화궁이 지어졌고, 1913년 8월 28일 문을 열었습니다. 평화궁의 역사 안내에 따르면 건축에는 미국에서 활동한 사업가 앤드루 카네기의 기부가 쓰였습니다.
그다음에는 국제연맹 시기의 상설국제사법재판소가 들어왔습니다. 이 재판소는 1922년 2월 15일 평화궁에서 첫 공식 회의를 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유엔을 만들면서 기존 재판소를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새로운 국제사법재판소를 세웠습니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의 역사 자료를 보면 옛 재판소의 기록과 업무상 유산은 새 재판소로 이어졌고, 소재지도 평화궁으로 정해졌습니다. 새 재판소는 1946년 4월 18일 같은 건물에서 첫 공개 회의를 열었습니다.
시간순으로 놓으면 1899년 상설중재재판소의 출발, 1913년 평화궁 개관, 1922년 상설국제사법재판소의 첫 회의, 1946년 국제사법재판소의 출범입니다. 헤이그라는 위치는 유엔 본부에서 떨어진 예외가 아니라, 이미 그곳에 쌓여 있던 국제 분쟁 해결의 역사와 연결돼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재판을 하나요?
국제사법재판소는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입니다.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국가가 제출한 법적 분쟁을 재판하고, 권한을 가진 유엔 기관이나 전문기구의 요청에 법률 문제에 관한 권고적 의견을 냅니다. 재판소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가 선출하는 판사 15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9년입니다.
국가 간 소송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이 직접 원고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행위로 자국민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사건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법정의 당사자는 두 국가입니다. 또 분쟁이 있다고 해서 재판소가 자동으로 심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사국들이 특별 합의로 사건을 맡기거나, 관련 조약의 조항 또는 관할권 수락 선언 등을 통해 재판소의 권한을 인정해야 합니다.
재판이 이뤄지면 판결은 그 사건의 당사국을 구속하고 항소할 수 없습니다. 반면 권고적 의견은 유엔 총회나 안전보장이사회 등 권한 있는 기관이 법률 문제를 물을 때 제시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판결과 같은 구속력은 없습니다. 뉴스에서 ‘판결’과 ‘권고적 의견’이라는 표현을 구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헤이그의 다른 국제재판소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헤이그에는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있습니다. 이름이 비슷하고 같은 도시에 있어 혼동하기 쉽지만, 다루는 대상이 다릅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 사이의 법적 분쟁을 심리하는 유엔 기관입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로마규정에 따라 세워진 별도 기관으로, 관할 범위에 해당하는 중대한 범죄에 대해 개인의 형사책임을 다룹니다. 국제형사재판소 역시 헤이그에 있지만 평화궁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와는 다른 건물을 사용합니다.
평화궁을 함께 쓰는 상설중재재판소도 국제사법재판소와 같은 기관은 아닙니다. 상설중재재판소는 당사자들이 합의한 중재 절차를 지원합니다. 이름의 ‘재판소’만 보고 두 기관을 하나로 읽으면 어떤 절차가 진행 중인지 놓치게 됩니다.
헤이그발 뉴스를 읽을 때 무엇을 확인하면 좋을까요?
‘헤이그에서 결정이 나왔다’는 문장 뒤에는 서로 다른 절차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먼저 기관 이름을 확인하고, 국제사법재판소라면 국가 간 소송인지 권고적 의견인지 보면 됩니다. 소송이라면 당사국과 재판소가 관할권을 갖는 근거도 중요합니다. 긴급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잠정조치가 내려졌다는 보도는 사건의 모든 쟁점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왔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제사법재판소 위치는 네덜란드 헤이그 평화궁이라는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소의 연표를 따라가 보면, 국가들이 분쟁을 힘 이외의 절차로 다루려 해 온 시간도 보입니다. 헤이그라는 지명이 뉴스에 나올 때 어느 기관이 누구의 어떤 문제를 판단하는지 한 번 더 구분해서 읽게 되는 까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