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국제기구와 어떤 관계일까요?

국제뉴스를 읽다가 ‘국제사법재판소가 명령했다’는 문장을 보면, 강의실에서도 질문이 나옵니다. 국제기구가 내린 결정이라면 모든 나라에 곧바로 적용되는 것인지, 개인도 그곳에 소송을 낼 수 있는지 헷갈리기 쉽습니다. 이름부터 차근차근 구분하면 뉴스의 뜻이 달라집니다.
유엔 안에 있는 재판소입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국제연합, 곧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입니다. 유엔과 별도로 만들어진 국제기구라기보다 유엔 체계 안에서 법률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라고 이해하면 정확합니다. 재판소의 전신인 상설국제사법재판소는 1922년 첫 재판을 열었습니다. 현재의 국제사법재판소는 1945년 채택된 유엔 헌장에 따라 설립돼 1946년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소재지는 네덜란드 헤이그입니다.
재판관은 15명입니다.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가 각각 선거를 실시해 선출하며 임기는 9년입니다. 재판관은 출신국의 대표로 앉는 것이 아닙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맡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국가 사이의 법적 분쟁에 판결을 내리고, 권한을 가진 유엔 기관 등의 요청을 받아 법률 문제에 권고적 의견을 제시합니다.
국제기구도 이곳에 소송을 낼 수 있을까요?
국가 간 재판에서는 국가만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기업, 시민단체, 개인은 물론 국제기구도 한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가령 자국민이 다른 나라에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판단한 국가가 그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갈 수는 있습니다. 그때도 재판의 당사자는 개인이 아니라 두 국가입니다.
국제기구와 재판소가 만나는 길은 ‘권고적 의견’이라는 절차입니다.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는 법률 문제에 관해 의견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유엔 기관이나 전문기구는 유엔 총회의 권한 부여를 받아 자기 업무 범위에 속하는 법률 문제를 물을 수 있습니다. 어느 국제기구든 원하는 분쟁을 곧바로 재판에 넘기는 방식은 아닙니다.
이 차이는 결과를 읽을 때도 중요합니다. 국가 간 사건의 판결은 해당 사건의 당사국에 구속력을 갖습니다. 권고적 의견은 일반적으로 그 자체로 구속력을 갖지 않지만, 법률 쟁점을 밝히는 데 쓰입니다. 따라서 기사에 ‘판결’이라고 적혔는지 ‘권고적 의견’이라고 적혔는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 간 분쟁이면 모두 재판할 수 있나요?
국가만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해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언제나 재판에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사건을 다루려면 관할권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두 나라가 특정 분쟁을 맡기기로 합의하거나, 가입한 조약에 재판소에 분쟁을 회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거나, 일정한 범위에서 재판소의 관할권을 받아들이는 선언을 한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어느 경로를 택했는지에 따라 재판소가 다룰 수 있는 쟁점의 범위도 달라집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2023년 12월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기한 사건을 떠올려 보죠. 남아공은 집단학살 방지 협약을 근거로 재판을 청구했고, 이스라엘은 주장을 다투었습니다. 재판소는 2024년 1월 26일 잠정조치를 명령했습니다. 잠정조치는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 재판에서 다투는 권리가 회복하기 어렵게 훼손되는 일을 막기 위한 절차입니다. 그 명령을 곧바로 집단학살 여부에 대한 최종 판결로 읽으면 절차의 단계를 건너뛰게 됩니다.
명령과 판결은 어떻게 지켜지나요?
국제사법재판소에는 국내 법원의 집행관처럼 현장에서 판결을 강제로 실행하는 조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결정이 단순한 의견에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유엔 헌장 제94조에 따라 회원국은 자신이 당사자인 사건의 판결을 따를 의무를 집니다. 판결이 이행되지 않으면 다른 당사국은 안전보장이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안보리는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권고하거나 조치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자동으로 제재가 시작되는 구조는 아닙니다.
잠정조치에도 법적 구속력이 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2001년 독일과 미국 사이의 라그랑 사건 판결에서 이를 분명히 했습니다. 반면 권고적 의견은 일반적으로 구속력이 없으므로, ‘재판소가 말했다’는 공통점만으로 세 문서의 효력을 같게 볼 수 없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도 이름이 비슷해 자주 섞입니다. 전자는 국가 사이의 법적 분쟁을 다룹니다. 후자는 일정한 국제범죄에 대한 개인의 형사책임을 다룹니다. 뉴스에서 재판소 이름을 본다면 누가 사건을 제기했고, 누구를 상대로 했으며, 나온 문서가 잠정조치인지 판결인지 권고적 의견인지 확인해 보게 됩니다. 그 세 가지가 보이면 국가들의 주장과 재판소가 실제로 판단한 범위를 구별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