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법재판소 규정은 무엇을 정하나요?

국제 분쟁 뉴스를 읽다 보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는 말이 자주 눈에 띕니다. 강의에서도 그다음 질문은 대개 비슷합니다. 소송을 냈다면 곧바로 재판이 시작되는지, 판결이 나오면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지 궁금하다는 겁니다. 이때 기준이 되는 문서가 국제사법재판소 규정입니다.
국제사법재판소 규정은 어디서 왔을까요?
국제사법재판소는 유엔의 주요 사법기관입니다. 그 조직과 권한, 재판 절차를 정한 문서가 국제사법재판소 규정이지요. 유엔 헌장 제92조에 따라 이 규정은 헌장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유엔 회원국은 헌장 제93조에 따라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규정의 당사국이 됩니다.
지금의 재판소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제연맹 시기에는 상설국제사법재판소가 1922년부터 활동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유엔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국제사법재판소가 설립됐고, 1946년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이전 재판소의 규정을 바탕으로 하되, 유엔 체제에 맞춰 새 법원을 세운 셈입니다.
규정에는 재판관 선출과 임기, 국가 간 분쟁을 다루는 권한, 재판 진행 방식, 권고적 의견에 관한 조항이 담겨 있습니다. 재판관은 15명이며 임기는 9년입니다. 판결 결과만 적은 문서가 아니라, 누가 어떤 조건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는지 정해 둔 기본 틀입니다.
국가가 소송을 내면 바로 심리할 수 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규정 제34조에 따르면 국가만이 국가 간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기업이 직접 이 재판소에 소장을 내는 구조는 아닙니다. 개인의 전쟁범죄를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와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지만, 두 기관이 맡는 사건은 다릅니다.
국가가 소송을 냈더라도 재판소에 그 분쟁을 다룰 권한이 있는지는 별도로 따집니다. 규정 제36조는 당사국이 사건을 함께 맡기기로 합의하거나, 조약에 재판소 회부 조항이 있거나, 국가들이 일정한 법적 분쟁에 대해 재판소의 관할권을 미리 받아들인 경우 등을 규정합니다. 마지막 경우에도 선언의 범위와 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규정에 가입한 사실만으로 모든 분쟁의 재판에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두 나라가 조약 해석을 놓고 다툰다면, 먼저 그 조약에 재판소 회부 근거가 있는지와 양국에 그 조약이 적용되는지를 봐야 합니다. 피소국이 재판에 반대한다고 해서 언제나 사건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제소했다는 이유만으로 관할권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관할권 자체가 다투어지면 재판소가 이를 판단합니다.
재판소는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나요?
규정 제38조는 재판소가 적용할 법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국가들이 인정한 조약, 법으로 받아들여지는 국제관습, 법의 일반원칙이 그 안에 들어갑니다. 다른 재판의 판결과 국제법 학자의 견해는 법규칙을 확인하는 보조 수단입니다. 그래서 국제 재판 기사에서 어느 조약 조항이 적용되는지, 오랫동안 반복된 국가의 행동이 법적 의무로 받아들여졌는지가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권리를 보전할 필요가 있으면 규정 제41조에 따른 잠정조치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는 최종 판결 전에 내려지는 조치입니다. 재판소는 2001년 독일과 미국 사이의 라그랑 사건 판결에서 잠정조치 명령에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잠정조치가 발표됐다는 사실과 본안에서 어느 쪽 주장이 인정됐다는 사실은 구분해서 읽어야 합니다.
판결은 이유를 밝혀야 하며, 규정 제59조에 따라 해당 사건의 당사국 사이에서만 구속력을 가집니다. 제60조는 판결이 최종적이고 항소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다만 판결의 의미나 범위를 두고 다툼이 있으면 해석을 요청할 수 있고, 제61조의 엄격한 요건 아래 새로운 결정적 사실에 근거한 재심도 가능합니다.
권고적 의견과 판결은 어떻게 다른가요?
국제사법재판소는 국가 간 소송 외에 법률 문제에 관한 권고적 의견도 냅니다. 규정 제65조와 유엔 헌장 제96조가 그 근거입니다.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가 요청할 수 있고, 권한을 부여받은 다른 유엔 기관이나 전문기구도 정해진 범위에서 요청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소송과 달리 권고적 의견을 직접 요청하는 주체가 아닙니다.
권고적 의견은 원칙적으로 당사국에 의무를 부과하는 판결과 같은 구속력을 갖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법적 설명으로서의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법 쟁점에 대한 재판소의 판단을 제시하므로, 이후 유엔과 각국의 논의에서 중요한 근거로 다뤄질 수 있습니다. 기사에서 ‘재판소가 판단했다’고 할 때는 판결인지 권고적 의견인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판결의 이행 문제도 따로 남습니다. 유엔 헌장 제94조는 사건 당사국이 판결을 따를 의무를 정하고, 이행되지 않을 경우 상대국이 안전보장이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합니다. 다만 안전보장이사회가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별도의 판단입니다. 저는 국제사법재판소 뉴스를 읽을 때 사건의 주장보다 먼저 관할권의 근거, 발표된 문서의 종류, 그 문서가 누구에게 어떤 효력을 갖는지를 확인합니다. 같은 ‘재판소 판단’이라는 말도 이 세 가지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