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협정 내용은 왜 평화 협정과 다를까요?

강의에서 한반도 지도를 펼치면 군사분계선을 가리키며 ‘여기가 38선인가요?’라고 묻는 분이 있습니다. 두 선은 다릅니다. 38선은 해방 뒤 남과 북을 나누던 기준선이고, 지금의 군사분계선은 1953년 정전 협정에 따라 정해진 선입니다. 정전 협정 내용을 읽을 때 이 차이부터 잡으면 지도에 그어진 선의 의미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전투를 멈춘 협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시작됐습니다. 전선은 남쪽으로 밀렸다가 다시 북쪽으로 올라갔고, 이후 전투가 길어졌습니다. 정전 회담은 1951년 7월 시작됐지만 합의까지는 2년 넘게 걸렸습니다. 어디에 선을 긋고 포로를 어떻게 돌려보낼지가 쉽게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협정이 서명됐습니다. 문서에는 유엔군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 당사자로 적혀 있습니다. 현장에서 대표로 서명한 사람은 유엔군 측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북한군·중국인민지원군 측 남일 대장입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서명 당사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통일에 앞서 전투를 멈추는 데 반대했지만, 정전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했습니다. 이 대목은 미국 국무부의 당시 외교 문서에도 남아 있습니다.
협정이 체결된 시각과 전투가 멈춘 시각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정 제12항은 서명 12시간 뒤 적대행위를 중지하도록 했고, 나머지 조항의 발효 시각은 그날 오후 10시로 명시했습니다. 그래서 7월 27일 오전 10시는 서명 시각, 오후 10시는 정전 발효 시각입니다.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는 무엇을 정했을까요?
협정 제1조는 첨부 지도에 군사분계선을 표시하고, 양측이 그 선에서 각각 2㎞씩 물러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폭 약 4㎞의 완충 공간이 비무장지대입니다. 전쟁 전의 38선을 그대로 되살린 것이 아니라, 정전 당시 양측 군대가 대치하던 위치를 바탕으로 새로운 선을 정한 셈입니다.
이 구역에서는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군사분계선을 넘으려면 군사정전위원회의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고, 비무장지대 출입에도 정해진 절차가 따릅니다. 이름에 ‘비무장’이 들어간다고 해서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유엔군사령부가 지금도 출입과 통과 절차를 관리한다고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다와 섬에 관한 규정도 있습니다. 협정은 상대방이 통제하는 해역을 존중하도록 하고, 서해 일부 섬의 군사적 통제 주체를 따로 적었습니다. 예를 들어 백령도·대청도·소청도·연평도·우도는 유엔군사령부의 군사적 통제 아래 남도록 명시했습니다. 다만 육상의 군사분계선처럼 서해 전체에 걸친 해상 경계선을 협정 본문에 그어 놓지는 않았습니다. 육상 경계와 해상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포로와 협정 위반 문제는 어떻게 다뤘을까요?
전투 중 붙잡힌 포로의 송환은 회담에서 오래 걸린 쟁점이었습니다. 협정은 송환을 원하는 포로를 지체 없이 돌려보내고, 해당 송환을 정전 발효 뒤 60일 안에 마치도록 했습니다.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포로는 별도의 중립국송환위원회가 맡는 절차를 두었습니다. 단순히 ‘양측 포로를 맞바꾼다’는 설명만으로는 당시 합의 내용을 다 담기 어렵습니다.
합의가 지켜지는지 살필 기구도 마련했습니다. 양측 대표가 참여하는 군사정전위원회는 협정 이행을 감독하고 위반 문제를 협의하도록 했습니다. 중립국감독위원회에는 정해진 장소에서 인원과 군사 장비의 반입 등을 감독하는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협정은 전투를 중지하라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중지 상태를 관리할 절차까지 적은 군사 문서였습니다.
왜 정전 뒤에도 평화 협정 이야기가 나올까요?
정전은 싸움을 멈추기로 한 합의입니다. 전쟁의 정치적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협정 서문도 최종적인 평화적 해결에 이르기까지 무력행위를 중지한다는 취지를 밝힙니다. 제60항은 발효 뒤 3개월 안에 정치회의를 열어 외국 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을 논의하자고 권고했습니다. 제62항은 양측이 받아들이는 수정이나 정치적 수준의 평화 합의로 대체되기 전까지 협정 조항이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합니다.
정치적 해법을 찾으려는 회의는 195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습니다. 그러나 평화 협정 체결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1953년에 전쟁이 끝났다’는 말은 일상의 표현으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협정의 성격을 설명할 때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멈춘 것은 대규모 전투였고, 평화 체제를 만드는 일은 별도의 과제로 남았습니다.
정전 협정 내용을 다시 볼 때 저는 세 가지 날짜와 숫자를 떠올립니다. 1953년 7월 27일, 서명에서 발효까지 12시간, 군사분계선 양쪽으로 각각 2㎞입니다. 그 위에 포로 송환과 이행 감독, 정치회담 조항을 얹으면 이 문서가 무엇을 해결했고 무엇을 남겼는지 차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