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권 거래제 도입은 왜 필요했을까요?

강의에서 ‘탄소 배출권’이라는 말을 꺼내면 배출권을 사기만 하면 온실가스를 얼마든지 내보내도 되는지 묻는 분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그렇게 느껴질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제도의 출발점은 거래가 아니라, 배출할 수 있는 전체 양에 한도를 두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권 거래제 도입은 2015년 1월 1일에 이뤄졌습니다. 정부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배출권을 할당하고, 기업은 실제 배출량에 맞는 배출권을 제출합니다. 남는 배출권은 팔고 부족한 배출권은 살 수 있습니다. 배출량을 줄인 기업이 그만큼 비용을 아낄 수 있도록 만든 구조입니다.
배출권은 무엇을 허용하나요?
배출권 1개는 보통 온실가스 1톤을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환산한 양을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처럼 온난화에 영향을 주는 다른 기체도 공통 단위로 바꿔 계산합니다. 그래서 ‘탄소’라는 짧은 이름과 달리 제도의 대상은 여러 온실가스입니다.
가령 한 기업이 1년 동안 쓸 배출권 100개를 확보했는데, 검증된 배출량이 90톤이라면 10개가 남습니다. 반대로 110톤을 배출했다면 부족한 10개를 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개별 기업의 배출량은 배출권을 사서 늘릴 수 있어도, 제도 전체의 배출허용총량은 정부가 정한 범위에 묶입니다. 배출권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가 온실가스를 줄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업은 배출량을 측정해 보고하고 검증을 받습니다. 그런 다음 인정된 배출량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제출합니다. 거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지므로, 배출을 줄이는 설비 투자와 배출권 구매 중 어느 쪽이 유리한지도 기업마다 다릅니다.
한국은 어떤 순서로 도입했나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실린 법률 연혁을 보면, 제도의 근거인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은 2012년 제정됐습니다. 법을 만든 뒤 곧바로 모든 기업에 적용한 것은 아닙니다. 적용 업체와 배출권 할당 기준을 마련하고, 계획기간을 나눠 운영했습니다.
- 2015년 1월 1일: 배출권 거래제 시행. 1차 계획기간은 2017년 말까지였습니다.
- 2018년부터 2020년까지: 2차 계획기간 운영.
- 2021년부터 2025년까지: 3차 계획기간 운영.
- 2026년부터 2030년까지: 현재의 4차 계획기간 운영.
왜 기업에 거래를 허용했을까요? 같은 1톤을 줄이더라도 필요한 비용이 기업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줄일 수 있는 기업은 더 감축하고 남은 배출권을 팔 수 있습니다. 당장 설비를 바꾸는 비용이 큰 기업은 배출권을 사서 의무를 맞출 수 있습니다. 정부는 전체 한도를 관리하고, 기업에는 감축 방법을 선택할 여지를 주는 방식입니다.
누가 적용받고, 2026년부터 무엇이 달라졌나요?
일반 가정이나 모든 소상공인이 직접 배출권을 제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출권거래법의 지정 기준에는 최근 3년간 연평균 배출량이 12만 5천 톤 이상인 업체, 또는 연평균 2만 5천 톤 이상을 배출하는 사업장을 하나 이상 보유한 업체가 포함됩니다. 다만 숫자만 넘으면 자동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 계획기간의 대상 부문·업종에 속하고 지정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일정 요건을 갖춘 기업의 자발적 참여도 가능합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5년 12월, 4차 계획기간에 참여하는 772개 업체에 2026년부터 2030년까지의 배출권 23억 6,299만 톤을 할당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숫자는 5년간 업체들에 할당한 배출권의 양입니다. 2026년 한 해의 실제 배출량이나 감축 실적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할당받는 배출권이 모두 무료인 것도 아닙니다. 발전 부문의 유상할당 비율은 2026년 15%에서 2027년 20%, 2028년 30%, 2029년 40%, 2030년 50%로 올라가도록 정해졌습니다. 유상할당은 기업이 배출권을 비용을 내고 받는 방식입니다. 반면 철강·석유화학 등 국제 경쟁에 노출된 여러 업종에는 무상할당을 유지합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산업 부문 가운데 약 95%에 해당하는 업종이 4차 계획기간에도 100% 무상할당 대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2030년에 모든 기업이 배출권 절반을 돈 주고 산다’는 해석은 맞지 않습니다.
효과와 부담은 어디에서 갈리나요?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쪽은 배출에 비용이 붙어야 기업이 설비 개선과 연료 전환을 검토한다고 봅니다. 무상으로 받는 배출권이 많거나 배출권 가격이 낮으면 감축에 투자할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는 논거입니다. 특히 정부가 정한 전체 한도가 감축 목표에 맞게 줄어드는지가 중요합니다.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쪽은 생산비와 전기요금에 미칠 영향을 따집니다. 설비 교체에 시간이 걸리는 업종은 배출권 구매 비용이 먼저 늘 수 있고, 해외 경쟁 기업과 부담이 다르면 수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거입니다. 다만 배출권 구매 비용이 늘어난 액수만큼 소비자 가격이 곧바로 오른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실제 영향은 배출권 가격, 기업의 감축량, 전원 구성, 요금 결정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앞으로의 결과도 한 방향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기업의 감축 투자가 늘고 거래가 원활해지면 배출량을 줄이면서 비용 변동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배출권이 부족한데 감축 설비 전환이 더디면 기업의 구매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제가 강의에서 먼저 확인하는 숫자는 거래 가격 하나가 아닙니다. 배출허용총량이 어떻게 바뀌는지, 실제 배출량은 얼마인지, 비용을 내고 받는 배출권의 비율은 누구에게 적용되는지를 함께 봅니다. 그래야 같은 ‘배출권 거래제’라는 말 아래에서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읽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