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왜 다시 거론될까요?

강의에서 선거 이야기를 꺼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우리 지역에서도 그 정당을 찍은 사람이 꽤 있는데, 왜 당선자는 한 명도 없나요?” 지역구 선거에서는 한 표 차이로 지더라도 의석은 얻지 못합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그렇게 의석에 반영되지 않은 표를 지역 단위에서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제안입니다.
‘권역별’이라는 말은 무엇을 바꾸나요?
비례대표는 정당이 얻은 표를 의석에 반영하는 방식입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의 정당 득표를 기준으로 그 권역의 비례대표를 뽑자는 구상입니다. 여기서 권역은 서울이나 부산 같은 한 시·도와 꼭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 시·도를 묶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는 전국의 정당 득표를 기준으로 의석을 배분합니다. 2024년 4월 10일 치른 제22대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지역구 254명, 비례대표 46명을 선출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기록에서도 이 숫자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이 선거에 적용된 제도가 아닙니다.
이름만 듣고 ‘전국 비례대표를 지역별로 나눠 뽑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권역의 크기, 권역마다 배정할 의석수, 지역구 당선자와 비례대표 의석을 연결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권역별 제도라도 설계가 다르면 당선자 수가 같을 수 없습니다.
2015년 중앙선관위 안은 어떻게 나왔나요?
논의가 크게 알려진 계기는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낸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입니다. 당시 선관위는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유지하면서 지역구를 200석, 비례대표를 100석으로 바꾸고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누자고 제안했습니다. 2024년 총선의 지역구 254석·비례대표 46석과 비교하면 비례대표의 비중을 크게 높이는 안이었습니다. 다만 두 숫자는 서로 다른 시점의 제도와 제안을 비교한 것입니다.
선관위가 제시한 6개 권역은 서울, 인천·경기·강원,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북·전남·제주, 대전·세종·충북·충남이었습니다. 이는 2015년 제안의 구획입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면 반드시 이 경계를 써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제안에는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정당 득표와 전체 의석 사이의 차이를 줄이려는 목적이 담겼습니다. 특정 정당이 한 지역에서 꾸준히 표를 얻어도 지역구 승리가 어려우면 그 지역을 대표하는 당선자를 내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입니다. 2015년 국회도서관에 수록된 선거제도 토론 자료에서도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가 함께 논의됐습니다. 그러나 제안이 곧 법률이 된 것은 아닙니다.
표는 의석으로 어떻게 이어지나요?
2015년 선관위 안의 특징은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친 정당별 의석을 먼저 계산한다는 점입니다. 그다음 이미 지역구에서 당선된 사람의 수를 빼고 남은 자리를 그 정당의 권역별 비례대표 명부에서 채웁니다. 비례대표 의석만 따로 떼어 득표율대로 나누는 방식과는 계산 순서가 다릅니다.
숫자를 단순하게 줄여 보겠습니다. 어떤 권역의 전체 의석이 10석이고, 한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배정된 몫이 3석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그 정당이 지역구에서 1석을 얻었다면 나머지 2석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식입니다. 지역구에서 이미 3석을 얻었다면 비례대표로 더 채울 몫은 없습니다. 실제 선거에서는 의석 배분 자격, 반올림, 권역별 배정 의석 등도 계산해야 하므로 이 예시가 곧 선거 결과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권역별과 연동형도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는 말입니다. ‘권역별’은 어느 범위의 표로 의석을 계산하느냐를 가리킵니다. ‘연동형’은 정당 득표에 따른 의석을 계산할 때 지역구 당선 수를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관한 방식입니다. 두 요소를 결합한 안도 있고, 권역만 나눈 다른 안도 만들 수 있습니다.
찬성과 우려는 어디에서 갈리나요?
찬성하는 쪽은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한 정당의 표도 해당 지역의 의석에 반영할 길이 생긴다고 봅니다. 한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지역구 대부분을 차지하더라도 다른 정당을 선택한 유권자의 표를 권역별 비례 의석에 담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의 차이를 줄이려는 취지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려하는 쪽은 권역을 어디서 나누고 의석을 몇 석씩 배정하느냐가 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한 권역의 비례대표 의석이 적으면 득표율이 낮은 정당은 의석을 얻기 어렵습니다. 지역구 수를 줄이는 안이라면 선거구를 합치거나 조정해야 하는 지역의 반발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비례대표 후보 순위를 누가 어떤 절차로 정하는지도 대표성에 영향을 줍니다.
비례대표 의석을 받을 수 있는 정당의 기준 역시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2024년 총선에 적용된 공직선거법에는 전국 정당 득표율 3% 이상 또는 지역구 5석 이상이라는 요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2026년 1월 29일 이 요건을 정한 공직선거법 제189조 제1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과거의 3%·5석 기준을 앞으로의 권역별 제도에도 그대로 적용될 확정 규칙처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논의에서는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요?
2026년 10월 현재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시행일과 적용 대상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법안이 나오면 먼저 국회의원 정수를 바꾸는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각각 몇 석으로 하는지 봐야 합니다. 이어 권역 경계와 권역별 의석수, 지역구 당선자를 계산에 반영하는 방법, 후보 명부를 정하는 절차를 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이름의 제도라도 이 숫자와 절차가 다르면 유권자의 표가 의석으로 이어지는 길도 달라집니다. 저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논의를 들을 때 어느 정당에 유리하다는 예상보다, 어떤 지역의 어떤 표가 현재보다 더 반영되는지부터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