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탄흔 굿즈 논란, 왜 이렇게 커졌을까요?

얼마 전 강의 준비를 하다가 수강생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영화 굿즈 하나가 왜 정치 뉴스처럼 커지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굿즈는 보통 팬 서비스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이번 암살자들 탄흔 굿즈 논란은 영화 홍보물, 현대사 기억, 실제 희생자에 대한 예우가 한 장면 안에서 겹치면서 커졌습니다.
논란이 된 굿즈는 무엇이었나
논란의 대상은 영화 암살자(들) 관람객에게 제공된 이른바 오리지널 티켓 형태의 기념품이었습니다. 종이 티켓과 투명판이 함께 구성됐고, 투명판에는 총탄 자국처럼 보이는 흔적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투명판을 종이 티켓 위에 겹치면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을 연상시키는 장면 위에 탄흔이 놓이는 방식으로 보였다는 점입니다.
탄흔이라는 말은 총알이 지나가거나 맞은 뒤 남은 자국을 뜻합니다. 영화에서는 긴장감과 사건성을 보여 주는 시각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적 피격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와 결합하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영화의 장면 재현이고, 누군가에게는 실제 죽음과 고통을 소비하는 행위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1974년 사건과 왜 연결됐나
논란이 커진 배경에는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기록에 따르면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제29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경축사를 읽는 중 저격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재일교포 문세광으로 발표됐고, 박 대통령은 무사했지만 육영수 여사는 총상을 입은 뒤 같은 날 숨졌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범죄로만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일 관계, 남북 관계, 유신 체제의 긴장까지 얽힌 사건이었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서도 이 사건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관계를 크게 흔든 사안으로 다뤄집니다. 그래서 광복절 기념식장, 총격, 영부인의 사망이라는 세 요소는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민감한 조합입니다.
비판하는 쪽은 무엇을 문제 삼았나
비판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실제 사망 사건을 상업적 기념품으로 활용해도 되는가입니다. 영화의 표현과 홍보는 창작의 영역이지만, 굿즈는 관객이 손에 들고 소장하는 물건입니다. 특히 투명판을 겹치는 방식은 관객이 직접 피격 장면을 완성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둘째, 역사적 비극을 다룰 때 필요한 거리감의 문제입니다. 전쟁, 테러, 암살, 국가폭력처럼 실제 피해자가 있는 사건은 장르적 긴장감만으로 다루기 어렵습니다. 해외에서도 참사나 테러를 소재로 한 작품은 홍보 문구와 기념품 제작에서 자주 논란을 겪습니다. 작품 자체보다 홍보물이 더 가볍게 보일 때 반발이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옹호하거나 신중하게 보는 쪽의 논거도 있다
반대로, 이것을 곧바로 조롱이나 모욕 의도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영화 홍보물은 작품 속 상징 이미지를 가져와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가박스의 오리지널 티켓 역시 그동안 여러 영화에서 대표 장면, 색감, 소품을 시각화해 온 형식입니다. 이번 굿즈도 제작 단계에서는 영화적 장치를 표현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표현의 자유 문제입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가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관객은 그 불편함을 통해 과거를 다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표현의 자유가 넓게 보장된다는 말과 홍보 방식이 적절했느냐는 질문은 별개입니다. 작품의 문제와 마케팅의 문제를 나누어 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업체의 대응과 남은 쟁점
논란이 확산된 뒤 메가박스는 사과 입장을 내고 남은 굿즈를 전량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YTN 등 보도에 따르면 해당 굿즈는 개봉 당일인 2026년 9월 23일 관객에게 배포됐고, 대부분은 이미 소진된 상태였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영화는 개봉 11일 차 무렵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넘긴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흥행과 논란이 동시에 진행된 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쟁점은 처벌이나 불매 같은 즉각적 반응만은 아닙니다. 앞으로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홍보물을 만들 때 어떤 기준을 둘 것인가가 더 오래 남습니다. 피해자와 유족이 있는 사건인지, 관객이 참여형으로 재현하게 되는 구조인지, 비극의 상징을 소장품처럼 소비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따져야 합니다.
- 작품 속 표현과 극장 홍보물은 같은 기준으로 볼 수 없습니다.
- 실제 사망 사건을 다룰 때는 장르적 효과보다 피해의 무게가 먼저 고려돼야 합니다.
- 논란을 평가할 때는 의도, 결과, 사후 대응을 나누어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암살자들 탄흔 굿즈 논란은 단순히 영화관이 기념품 하나를 잘못 만들었다는 이야기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역사적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중립적인 소재가 되지 않습니다. 특히 누군가의 죽음이 들어 있는 장면은 더 그렇습니다. 창작은 과거를 다시 꺼낼 수 있지만, 홍보는 그 과거를 너무 쉽게 손에 쥐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이번 일은 바로 그 경계가 어디인지 묻게 만든 사례로 남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