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권 가격 상승, 전기요금과 기업 비용까지 이어질까요?

강의장에서 탄소 배출권 이야기를 하면 처음에는 주식이나 코인처럼 느끼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격이 오르고 내리니 금융상품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배출권은 출발점이 조금 다릅니다. 기업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려면 일정량의 권리가 필요하고, 그 권리가 부족하면 시장에서 사야 합니다. 그래서 가격 상승은 단순한 투자 뉴스가 아니라 전력 생산, 철강, 시멘트, 항공, 물류 비용과 연결됩니다.
탄소 배출권은 왜 가격이 붙을까요?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보통 캡 앤드 트레이드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정부가 전체 배출 허용량, 즉 캡을 정하고 기업별로 배출권을 나눠줍니다. 실제 배출량이 받은 배출권보다 적으면 남는 물량을 팔 수 있고, 더 많이 배출하면 부족분을 사야 합니다.
가격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배출권 총량은 제한돼 있고, 기업마다 필요한 양은 다릅니다. 경기 회복으로 공장이 더 많이 돌거나, 전력 수요가 늘거나, 석탄처럼 배출량이 많은 연료 사용이 늘면 배출권 수요가 증가합니다. 반대로 정부가 배출 허용 총량을 줄이면 공급이 줄어 가격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배출권 거래제는 이런 구조가 가장 오래된 사례입니다. 유럽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EU ETS는 현재 유럽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0%를 포괄합니다. 2021년 이후 가격은 톤당 50유로를 웃도는 수준이 됐고, 2022~2023년 평균은 약 80유로, 2024년 평균은 약 65유로로 낮아졌습니다. 2025년에는 대체로 60~80유로 범위에서 움직였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최근 가격 상승을 만든 요인은 무엇일까요?
배출권 가격 상승에는 한 가지 원인만 있는 게 아닙니다. 첫째는 제도 자체의 강화입니다. 유럽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최소 55% 순감축으로 맞추면서 배출권 총량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쳤습니다. 총량이 줄어든다는 예상은 시장 가격에 먼저 반영됩니다.
둘째는 에너지 가격입니다. 유럽중앙은행 분석은 2021년 이후 가격 상승 과정에서 천연가스 가격 급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봤습니다. 가스가 비싸지면 일부 전력회사는 석탄 발전을 더 쓰게 됩니다. 석탄은 같은 전기를 만들 때 이산화탄소 배출이 더 많기 때문에 배출권 수요가 늘어납니다.
셋째는 시장안정화 장치입니다. 유럽에는 시장에 남아도는 배출권을 흡수하는 장치가 있습니다. 배출권이 과잉 공급되면 가격 신호가 약해지기 때문에 일정 물량을 시장에서 빼는 구조입니다. 이 장치가 도입된 뒤 저가에 머물던 배출권 가격이 올라갔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넷째는 국경탄소조정제도입니다. 2026년부터 유럽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일부 품목에 대해 수입품의 탄소 비용을 단계적으로 반영합니다. 동시에 해당 산업에 주던 무상할당은 점차 줄어듭니다. 2026년 감축률은 2.5%, 2027년은 5%로 작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 비용을 계산하게 만드는 신호입니다.
한국 시장에서는 어떤 숫자를 봐야 할까요?
한국도 배출권 거래제를 운영합니다. 한국거래소 배출권시장 정보플랫폼 기준으로 2026년 7월 16일 KAU25 종가는 톤당 2만5,600원이었습니다. 전일보다 100원, 0.39% 오른 가격이고 거래량은 18만3,678톤이었습니다. 같은 화면에서 2026년 7월 10일 종가는 2만5,350원이었으니 며칠 사이 큰 폭의 급등이라기보다는 완만한 상승 흐름에 가깝습니다.
다만 상쇄등록부시스템에서 확인되는 다른 일자 자료를 보면 2025년 할당배출권 종가가 2만3,700원, 2026년 할당배출권 기준가격이 2만4,500원으로 나타납니다. 한국 시장은 유럽처럼 톤당 80유로 안팎의 가격대와는 차이가 큽니다. 환율을 단순 적용하면 유럽 가격은 한국 가격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이 차이는 제도 설계, 무상할당 비중, 산업 구조, 거래량, 시장 참여자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생깁니다. 그래서 탄소 배출권 가격 상승이라는 같은 표현을 쓰더라도 유럽과 한국의 의미는 다릅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산업 경쟁력과 전기요금 논쟁의 한복판에 있고, 한국에서는 향후 제도 강화와 기업 부담 배분 문제가 더 크게 남아 있습니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에게 바로 전가될까요?
바로 전가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업종마다 다릅니다. 전력 부문은 배출권 비용이 도매 전력가격에 반영될 가능성이 큽니다. 유럽위원회도 기존 ETS의 가격 영향이 주로 전기요금 경로를 통해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화석연료 발전소가 전력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시간대에는 탄소 비용이 전기 가격에 들어갈 여지가 커집니다.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처럼 에너지와 공정 배출이 많은 산업은 생산비 부담을 받습니다. 다만 모든 비용을 제품 가격에 그대로 얹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외 경쟁, 장기 공급계약, 정부 보조, 무상할당, 전기요금 규제 등이 함께 작동합니다.
- 전력회사는 연료비와 배출권 비용을 함께 봅니다.
- 제조업은 무상할당 축소 속도와 수출 경쟁력을 따집니다.
- 소비자는 전기요금, 제품 가격, 세금 지원 방식으로 간접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정부는 감축 목표와 산업 부담 사이의 균형을 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배출권 가격 상승은 물가 상승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에너지 가격이 불안한 시기에는 비용 압력을 키우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볼 세 가지 시나리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완만한 상승입니다. 로이터가 2026년 7월 31일 전한 애널리스트 설문에서는 EU 배출권 평균가격 전망이 2026년 톤당 79.97유로, 2027년 89.13유로로 제시됐습니다. 당시 기준 벤치마크 가격은 약 82유로였습니다. 공급은 줄지만 산업 부담을 완화하는 제도 조정이 함께 들어가면 가격은 오르되 속도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재상승입니다. 겨울철 에너지 수요가 늘고, 가스 가격이 다시 오르며, 석탄 발전 비중이 커지면 배출권 수요가 증가합니다. 여기에 배출권 총량 감축이 계속되면 시장은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조정입니다. 경기 둔화로 산업 생산이 줄거나, 재생에너지와 원전 발전 비중이 커져 화석연료 발전이 줄면 배출권 수요가 낮아집니다. 정부가 산업 부담을 이유로 제도 완화 신호를 주는 경우도 가격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탄소 배출권 가격을 볼 때는 숫자 하나보다 배경을 함께 봐야 합니다. 가격이 오른다는 말은 기업을 벌주겠다는 뜻만도 아니고, 곧바로 생활비가 폭등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다만 탄소를 배출하는 행위에 비용이 붙는 제도가 점점 현실의 가격표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앞으로 전기요금, 산업 지원, 수출 경쟁력 논쟁을 읽을 때 배출권 가격은 옆에 놓고 봐야 할 숫자가 됐습니다.
